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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저주’ 투탕카멘의 비밀을 풀다-하
세계사 | 2010/03/11 09:54
2010/03/11 09:54 2010/03/11 09:54
18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투탕카멘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는 암살됐거나 독살됐을 거라는 소문이 많았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 6대 왕인 단종애사(端宗哀史)를 돌아보게 하는 추측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라는 권력투쟁에서 억울하게 희생됐을 거라는 주장이다.

물론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춘원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조선시대 단종에 관한 슬픈 역사로 숙질 간이었던 단종과 세조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종이 수양대군인 자기 숙부에게 왕권도 뺏기고 결국 살해되는 과정에 대해 쓴 소설이다. 단종은 투탕카멘보다도 더 짧은 4년 재위도 못 채우고 죽었다.

우리나라 <端宗哀史>를 떠올리게 했던 투탕카멘

최근 초상이 복원된 투탕카멘의 얼굴은 황금가면과 아주 비슷하다는 지적이 많다.
요즘 TV나 소설을 보면 단종을 죽이고 세조의 찬탈을 도와 천수를 누리며 기러기와 벗했다는 한명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심지어 미화까지 하면서. 그러나 이에 반대했던 성삼문을 비롯해 사육신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다.

한명회 같은 소설은 역사 속에서 승자의 이야기고 단종애사는 패자의 이야기다. 결국 패자의 이야기는 점차 세월이라는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간다. 역사는 승자의 몫인 만큼 패자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사라져 간다.

사람들은 투탕카멘도 그런 시각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독살된 것도 아니고 피살된 것도 아니었다. 또 그렇다고 일부에서 지적한 것처럼 말라리아 모기에 감염돼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와 다른 질병에 의해 감염돼 죽었다는 게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유물이 너무나 많이 발견돼 가장 유명해진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사망원인이 타살이 아니라 다리부위의 골절로 인한 치명적인 세균감염으로 사망했다고 과학자들은 최종 결론을 내렸다. DNA검사와 CT촬영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 골절상을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커다란 골절상을 입을 정도라면 당시 유행했던 전차경기 도중 전차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골절상이 너무 커서 결국 세균 감염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전차경기 도중 다리 골절상으로 죽어

       투탕카멘이 이복 누나이자 아내인
         앙케세나멘으로부터 꽃을 받고 있다.
전차경기는 <벤허>를 비롯해 고대 로마를 소재로 한 영화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검투시합과 함께 로마귀족들이 즐겨보는 위험과 스릴이 넘치는 스포츠였다. 또한 전쟁을 대비한 군사훈련이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달리는 전차에서 실족하게 되면 크게 다치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당시 혈기 왕성했던 사람들에게 용맹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8세, 우리로 따지자면 20세에 가까운 혈기 왕성했던 투탕카멘은 전차경기에 참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골절상을 입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이집트 과학자들은 처음으로 투탕카멘의 초상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복원된 초상은 무덤에서 발견된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상당히 닮았다라는 지적이 많다. 고대 이집트 인들이 소년 파라오가 죽자 왕의 모습과 거의 같은 황금 마스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신을 보면 과학자들은 CT스캐너로 15분에 걸쳐 투탕카멘 미라의 각 부위를 촬영하면서 총 1천700여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근거로 프랑스와 미국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소년 파라오의 초상을 복원했다.

이 초상은 열에 강한 합성수지의 일종인 실리콘 수지(silicon resin)로 만들었으며 투탕카멘의 두부와 얼굴의 특징을 잘 살려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초상복원 성공, 황금 마스크와 비슷해”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CT촬영은 평면적인 X-선 사진과는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1mm 간격으로 촘촘히 촬영하여 컴퓨터로 3차원적인 영상을 재구성하므로, 머리의 부상 등 신체 각 부위의 손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CT보다 좀더 정밀한 것으로는 역시 병원에서 사용되는 MRI가 있다. MRI는 인체에 들어 있는 물 성분 속의 수소를 이용하는 검사이다. 따라서 만들어질 때 이미 물기가 제거되고 건조한 상태에서 수천 년이나 지난 투탕카멘 미라에게는 MRI 검사가 여의치 않았다. 미라처럼 골격과 말라붙은 근육조직만 있을 경우 틀어지거나 부러진 흔적을 알아내기엔 CT가 더 효과적이다.

이러한 얼굴 복원기술은 원래 범죄수사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이다. 앞에서 예로 든 역사 인물들은 이미 신원이 밝혀진 상태에서 복원 작업을 한 것이지만, 범죄수사에서는 신원 미상의 시체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방법으로 얼굴 복원기술이 채택된다.

유전자 검사 등으로도 도저히 시체의 신원을 알아낼 수 없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시행되는데 미국의 경우 미제 사건의 약 60~70%가 이 방법으로 해결된다고 한다. 물론 형태를 지닌 유골이 잘 보존됐을 경우다.

사망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 세포핵 속의 DNA가 상당수 분해된다. 고대 DNA를 추적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미라처럼 수분을 제거하고 약품 처리가 된 경우 대부분 DNA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DNA로 각종 질병 및 유전병까지 추적 가능

            투탕카멘의 미이라 얼굴 모습.
            CT촬영으로 얼굴을 복원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DNA가 중간중간에 깨어져 있다 할지라도 미라처럼 채취할 DNA 시료가 많을 경우 손상된 부위를 증폭시켜 카피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충분히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추출한 DNA로 먼저 추정해볼 수 있는 사인은 그 시대의 사망원인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감염성 질환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전염병에 의해 사망했다면, 그 박테리아 또는 바이러스가 투탕카멘의 조직세포 속에 극소량이나마 남아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흑사병으로 잘 알려진 페스트균의 특정 DNA를 수만 배 증폭하는 시약을 투입했을 때 투탕카멘의 DNA가 증폭되면 사망 당시 페스트에 감염되었다고 판정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기생충 등에 유발되는 질병을 거의 모두 진단해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전자 이상이나 돌연변이에 의한 질병인지의 판단도 가능하며 고혈압이나 당뇨 등 복합적 질환도 진단할 수 있다. 또한 단일 유전자 질환의 경우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조만간 친부(親父)도 가려질 전망

투탕카멘의 죽음의 비밀은 알려졌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은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즉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잘 알려져 있지가 않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미스터리도 조만간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는 Y염색체를 검사하면 할아버지나 삼촌 등 남성 쪽의 계보를 알 수 있다. 또한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iDNA)를 분석하면 여성 쪽 계보를 알아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투탕카멘의 친부(親父)가 누구인지 밝혀질 수도 있다. 투탕카멘의아버지는 제 10대 왕 이크나톤의 아우, 그의 조카 등등 출생성분이 명확하지 않다.

한편 1922년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태아 미라 2구가 투탕카멘의 쌍둥이 딸인 것으로 밝혀져 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세 때 이복 누나인 앙케세나멘(Ankhesenamun)과 결혼한 투탕카멘 왕은 18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자손이 없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난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과 함께 발견된 이들 태아 미라는 비록 크기는 다르지만 쌍둥이 여아들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투탕카멘의 친딸여부에 대한 DNA 검사결과 발표가 지난해 (2009) 9월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공개됐다.

검사를 담당한 고고학자 로버트 코놀리(Robert Connolly)교수는 “검사 결과 투탕카멘의 유전자와 2구의 태아 미라의 유전자가 일치했다”고 설명하면서 “투탕카멘에게 딸이 있었다는 확실한 결론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투탕카멘에게 쌍둥이 딸이 있었다.

중남미 고고학 전문가로 <인디아나 존스>의 소재가 된 코놀리 교수는 마야문명지인 멕시코메리다의 한 박물관에 소장된 이상한 정체불명의 해골 ‘메리다 해골’로 유명한 학자다. 그는 또 UFO, 외계인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다. 고고학을 통해 외계문명을 밝히려는 연구에 골몰하는 학자다.

코놀리 교수는 “두 미라의 사인(死因)은 CT촬영과 DNA검사를 통해 앞으로 밝혀낼 예정”이라며 “이는 소년 왕 투탕카멘의 삶과 죽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돼 그의 혈통을 비롯해 얽힌 역사적 사건을 추적하는데도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18왕조 12대 왕으로 9살에 즉위하여 18세에 요절했다. 재위 기간이 겨우 9년에 불과하며 훌륭한 치적을 남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유명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무덤에서 나온 엄청난 유물 때문이다. 무려 110kg에 이르는 황금 관과 황금가면 등 호화찬란한 금은보화, 그리고 3천 여 년 동안 마르지 않은 향료 등 3천 500여 점의 귀중한 유물이 나왔다. 오늘날 카이로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들이 대부분 그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라오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왕들의 골짜기’에서 이제까지 도굴 당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된 왕의 무덤으로 투탕카멘의 무덤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투탕카멘 복제도 가능할까?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때문이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후손도 남기지 않은 왕의 갑작스런 죽음 자체가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킬 소재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는 무덤 발굴에 간여한 사람들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퍼진 ‘미라의 저주’라는 괴이한 소문 덕분이다.

발굴 다음해인 1923년 발굴을 지휘한 영국의 조지 카너번이 갑작스레 죽은 걸 시작으로 무덤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원인불명의 병이나 사고 등으로 세상을 뜨자 투탕카멘의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문은 투탕카멘을 대중적 신화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투탕카멘과 함께 묻힌 과일과 야채 등이 수천 년 동안 썩으면서 생긴 곰팡이가 무덤이 열리자 재빨리 인체에 침입한 후 치명적인 질병을 초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또 일부 학자들은 독약 전문가인 이집트인들이 피부에 스며들기만 해도 치명적인 독을 무덤 안의 벽에 칠해놓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발굴 작업에 관련된 사람 1천5백여 명 중 10년 이내에 사망한 사람은 21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투탕카멘의 무덤을 최초로 개봉하고 줄곧 발굴 작업을 한 당사자인 카터는 18년을 멀쩡하게 살다가 66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이처럼 DNA를 비롯해 현대과학은 말라붙은 미라를 통해 투탕카멘의 죽음의 비밀을 풀었다. 또 그를 둘러싼 많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투탕카멘의 DNA를 통해 그를 실질적으로 복제하는 기술도 나오지 않을까? 3천년 전 어린 왕을 말이다.

김형근 칼럼니스트(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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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저주’ 투탕카멘의 비밀을 풀다-상
세계사 | 2010/03/11 09:52
2010/03/11 09:52 2010/03/11 09:52
과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풀 수 있는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종교는 화려한 진실로, 미신은 거추장스러운 기만으로 해석할 것인가? 종교와 미신의 차이는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또 거대한 종교집단에서 즐겨 비난하는 사교(邪敎)는 정말 사악한 종교를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은 빠른 날개를 타고 파라오(왕)의 평안을 교란시키는 자에게 다가 갈 것이다(Death shall come on swift wings to him who disturbs the peace of the King)”

발굴 후원자 카너번 경, 말라리아로 죽어

          투탕카멘이 유명하게 된 것은 그의         무덤에서 황금 마스크를 비롯해 많은
        유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이집트 피라미드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카너번 경(Lord Carnarvon)은 그야말로 ‘한 건’ 하는 야망에 불타 있었다. 피라미드 속을 낱낱이 해부해 그 비밀을 캐는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이집트의 위대한 비밀을 고스란히 영국의 자존심 대영제국 박물관에 가져가려 했다. 그래서 여왕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싶었다.

그는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투탕카멘의 묘를 발굴하는데 경제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카너번 경을 비롯해 발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과 친척 등 20명이 사망하면서 ‘미라의 저주’ 소문이 확산됐다

그는 말로만 듣던 고대 이집트 왕 투탕카멘(Tutankhmun)의 미라가 들어있는 관에서 저주의 문구를 보았다. 그로부터 6주 후 카너번 경은 말라리아 모기에 물려 사망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열대지방에 만연하던 말라리아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치료약이 없었다.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말라리아가 아니라 패혈증(blood poisoning)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카너번 경의 얼굴에 모기가 날아들었다. 모기를 잡기 위해 얼굴을 후려쳤다. 그 부위에 상처가 났다. 면도를 하다가 그 상처를 건드렸다. 세균에 감염됐다. 그 후 패혈증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른다. 공교롭게도 모기에 물린 자리가 투탕카멘의 얼굴에 나있는 상처 부위와 같았다. 그 뒤 발굴에 함께 참여한 11명이 7년 안에 모두 숨지자 사람들은 대원들이 미라의 저주를 받았다고 수군거렸다.

‘미라의 저주’,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파라오의 저주(Curse of the Pharaohs)는 왜 계속되는 것일까? 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죽은 사람의 시체의 저주에 사람들은 그토록 관심을 갖는 것일까? 살아 있는 사람이 갈 수 없는 세계 영계(靈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18세로 죽은 투탕카멘은 恨 많은 파라오?

이탈리아 알프스 지방 얼음 속에서 발견된 아이스맨 미라의 저주도 한동안 언론의 화제거리였다.
또 유독 18세의 나이로 죽은 투탕카멘의 저주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다 피지 못한 그의 청춘을 못내 아쉬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을 품은 그의 저주는 더욱더 크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고대의 비밀을 캐는 DNA는 이에 대해 어떤 해답을 주고 있을까?

미라의 저주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1991년 이탈리아 알프스 빙벽에서 얼음 속의 미라 아이스맨이 발견됐다. 역시 발견자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소위 ‘외치의 저주(Otzi’s curses)’다.

발견된 지명을 따 외치(Otzi)라는 이름을 얻은 아이스맨 미라의 주인공은 이집트의 파라오 보다 더 나이가 많다. 5천300여 년 전 년 석기시대에 가축을 기르며 살았다. 유럽에서 발견된 미라 가운데 가자 오래된 미라다.

우연히 외치를 발견한 독일 관광객 에리카(Erika)와 헬무트 시몬(Helmut Simon) 부부는 유물 발견자에게 유물 가치의 25%를 주도록 돼 있는 법에 따라 1천만 리라(약 900만원)를 주정부에 요구했다.

미라의 저주는 이탈리아에서도

아마추어 고고학자 카너번 경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해부해 영국으로 가져가려는 야망에 불타 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미라의 저주’가 시작됐다.
다시 말해서 발견자의 몫(finder’s fee)을 달라고 주장했다. 부부는 자신들이 미라를 발견한 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호텔과 레스토랑 등 현지 관광시설이 많은 돈을 벌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법원도 부부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주정부는 미라 보관에 많은 비용이 들어 지급할 수 없다며 항소하기도 했다. 17년에 이르는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결국 부부에게 15만 유로(약 26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 헬무트는 4년 전 산행을 갔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이밖에 외치의 발견과 관련된 여섯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언론이 가만 있을 리 만무하다. 파라오의 저주에서 언론은 엄청난 재미를 봤다. 영국의 BBC 방송은 투탕카멘의 관을 처음으로 열었던 카르나본 경의 죽음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미라의 저주가 죽음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투탕카멘이 유명하게 된 것은 발견된 유물 때문

정확하게는 투트 앙크 아멘이라 한다. 제10대 왕 이크나톤(아멘헤테프 4세)의 아우 또는 조카라고도 하는데 출생에 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다. 그러나 1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왕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업적에 관한 기록도 남겨지지 않아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가 정작 유명하게 된 것은 다만 그의 묘가 테베의 서쪽 교외인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발견됐으며 무수하게 많은 소장품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유명한 황금가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라의 저주’는 21세기가 돼서도 여전히 계속됐다. 황금마스크 소년 왕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도난 된 것으로 보이는 부장품을 소지한 사람들과 관련해 최근 또다시 4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20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부인이 자신의 가족에게 내린 투탕카멘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이집트 문화부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가 전달되게 된 내용은 이렇다. 남아공의 한 선원이 이집트에 있는 한 도박장에서 투탕카멘 무덤에서 훔친 것으로 보이는 고대 이집트 인장인 스카라브(scarab)를 수중에 넣게 됐다.

미라의 저주는 21세기에도 계속 돼

이 선원은 아주 자랑스럽게 뽐내면서 스카라브를 딸에게 선물했다. 선물한 후 그는 바다에서 실종됐으며 며칠 후에는 딸도 백혈병으로 숨졌다.

실종된 선원의 아내는 잇단 악운이 스카라브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유물을 찜찜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문제의 스카라브를 다른 부인에게 팔아버렸는데 바로 이 부인이 이집트 문화부에 편지를 쓴 장본인이다.

이 여성은 스카라브를 소유한 지 얼마 안돼 딸이 백혈병으로 숨지자 이를 이상히 여겨 알아본 결과 투탕카멘 묘 발굴과 관련 있는 여러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얘기를 접하게 됐다.

불길하게 생각한 그녀는 스카라브를 또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기려고 노력하다가 임자를 만났다. 그러나 이 물건을 건네주기 전날 남편이 갑자기 사망해버리고 말았다.

이 여성은 투탕카멘 왕과 얽힌 여러 얘기들을 수소문했다. ‘미라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의 스카라브를 원주인인 이집트에 되돌려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집트 문화부에 서신을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의 소스는 이집트 고유물위원회(SCA)에서 나왔다.

“투탕카멘은 독살된 것이 아니다”

9세에 즉위해서 18살에 죽은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의 통치자로써는 유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대표적인 파라오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독살됐을 거라는 소문도 많았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파수꾼 DNA는 그가 독살과 같은 타살이 아니라 세균에 오염돼 죽었다고 판결을 내렸다. 요절한 투탕카멘은 권력투쟁에서 희생된 한 많은 청춘을 보낸 왕이 아니라 세균 감염으로 죽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우리 인간에게 복수하고 저주할 정도로 깊은 원한을 갖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사는 애꿎은 사람들에게 까지 저주를 내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들에게는 언제나 벌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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